[ 화제의 인물 ]
강릉원주대학교는 올해 2학기부터 국제개발전문가 양성 특성화대학 및 다문화 인재 양성을 실현하고자 GWNU 다문화장학금 (GWNU GLOBAL SCHOLASHIP)을 신설하였다. ODA(국제개발협력위원회 지정 중점 협력대상국) 국가의 자매대학 학생을 대상으로 장학생을 선발하는데 한국어능력이 편입학 조건에 부합한 자, ODA 국가의 외국 국적 결혼이민자 중심으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ODA국가 자매대학 대학생의 경우 총장이나 학창의 추천을 받아 선발되고, 결혼이민자 장학생은 별도의 심사를 거쳐 선발되는데 자매대학 학생은 최대 2년 동안 등록금 전액과 생활관비 전액이 지원되며, 결혼이민자 장학생은 신입학일 경우 최대 4년, 편입학일 경우 최대 2년의 등록금이 면제된다. 국제개발협력 인재 육성을 목표로 지원되는 다문화 장학금 1호는 인도네시아의 가자마다 대학(Universitas Gadjah Mada)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헨리 파할라 피닐리(Henry Pahala Pinilih)에게로 돌아갔다. 가자마다 대학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대학으로 강릉원주대학교와는 지난 2001년 10월에 학술교류협정을 맺은 후 대학원생 및 교환학생의 교류가 활발한 자매대학이다. 강릉원주대를 졸업한 다수의 동문이 현재 가자마다 대학의 교수와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특히 13명의 동문이 현지에서 강릉원주대학교 동문회를 구성하여 대학 간의 교류는 물론 각별한 모교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특히 지난 해 9월에 강릉원주대 동문과 가자마다 대학 한국어학과의 도움으로 'Korean Culture Fair'기간에 강릉원주대 단독 유학박람회를 개최 홍보효과를 톡톡히 보았다고 한다. 강릉원주대는 이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자 한국어 관련 교재를 구매하여 교직원들이 기부한 도서와 함께 가자마다 대학 한국어학과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런 훈훈한 인연을 간직하고 있는 가자마다 대학 한국어학과에서 강릉원주대 다문화 장학금 1호 주인공이 탄생되었으니 더 뜻 깊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인도네시아 청년 헨리 파할라 피닐리(Henry Pahala Pinilih)는 어떻게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일까?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Henry : 처음에는 한국어학과에 입학할 생각이 없었어요. 원래는 정치 경제에 관심이 많았죠. 한국어를 전공하기로 결정한 건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어요. 아버지께서 평소에 남부아시아에 관심이 많으셔서 저에게 한국어학과를 추천해주셨죠. 아버지 말씀을 따르기로 결정한 건 제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바로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사이가 좋아서 같이 여행도 많이 다니고, 조용한 곳에서 속 깊은 대화도 자주 나눴어요.
Henry : 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게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항상 아버지께서 인생에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주시곤 했죠. 저의 세계관을 확장시켜준 분이에요.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분입니다. 제가 취업을 해야 하나, 아니면 다시 강릉에서 공부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병상에 계신 아버지 손을 잡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았어요. 말씀도 못 하시고, 사람도 못 알아보시지만 아마 다 듣고 느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아버지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마치 대답을 해주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유학 가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올해 헨리의 목표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 5급을 취득하는 것인데 유학생에게 지원되는 혜택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학업을 계속 이어갈지, 취업으로 방향을 잡을지 아직 확실히 결정하지 못했지만 지금으로써는 아버지가 꿈꾸는 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인도네시아로 돌아갔을 때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스스로도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향후에는 가자마다 대학의 한국어학과 학생들에게 한국어뿐만 아니라 인생의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멘토가 되고자 한다. 그런 헨리의 꿈은 ‘아버지’라는 토양 위에서 시작되어 뿌리를 내렸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격려와 믿음, 좋은 경험들과 함께 피워낸 그 꿈은 그 어떤 꽃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인터뷰 후기
헨리는 무척 밝고 건강한 생각을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가 반듯하고 모나지 않은 청년으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난스럽게 웃다가도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면 경외심으로 빛나던 헨리의 눈빛과 ‘우리 아버지처럼 훌륭한 아버지,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진솔한 표정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습니다.